자크 라캉 - 살림지식총서 340
1. 소개글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에 대한 쉽고 충실한 입문서. 주로 ‘욕망의 윤리’라는 핵심 주제에 집중하여 독자들이 라캉의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특히 욕망과 쾌락이 지닌 정치적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2. 저자 소개
김용수
현 한림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부교수. 미국 뉴욕주립대(SUNY at Buffalo)에서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에 대한 정신분석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저로 『대중문학: 주변부의 반란』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폭력, 정치 그리고 라캉의 정신분석: 아부 그라이브 감옥과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에 나타난 고문의 논리와 도착의 시선」「악(惡)과의 동침: <나쁜 남자>에 나타난 남성의 몸과 윤리」 등이 있다. 정신분석 개념들과 영화기법을 연결하여 영화 작품을 세밀하게 해석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3. 본문 소개
소문은 소문일 뿐이다. 개설서나 입문서를 통해 라캉의 이론을 접하는 것은 그의 풍요로운 사유 속으로 들어가는 첫걸음은 될 수 있을지언정 우리에게 번뜩이는 통찰과 영감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소문으로서의 라캉은 상식의 양만 늘려줄 뿐 질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것은 굳어진 인식의 틀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지 못하고, 우리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지도 않으며, 삶의 창조적인 활기를 건조한 일상에 불어넣지도 않는다. 이것은 마치 음악은 직접 듣지 않은 채 그 음악에 관한 갖가지 정보만을 습득하는 것과 같다. 어떤 음악 속에 깊이 빠져드는 경험이 없다면 그 음악에 관한 정보가 아무리 많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은 그저 상식이요, 소문일 뿐 음악은 아니다. (4-5쪽)
라캉이 말하는 욕망이 자본주의적인 소비 욕구가 아니라는 점도 동시에 강조되어야 한다. 풍요를 향한 세속적인 욕망은 분명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것은 윤리적인 의미에서의 욕망은 아니다. 안락과 편의를 추구하는 물질적인 욕망은 현실에 안주하고 그 질서에 순응하는 현상유지의 욕구일 뿐이다. 정신분석이 주목하는 욕망은 현실 질서를 넘어서고 또 넘어설 수밖에 없다. 현실은 욕망의 소중한 대상을 주체에게 제공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실 속의 어떤 사물도 만족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욕망은 따라서 현실의 저편을 지향한다. 그런 의미에서 윤리적인 준칙으로서의 라캉의 욕망은 전복적이고 급진적이라 할 만하다. (9-10쪽)
실재(the real)는 라캉의 정신분석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라캉의 다른 개념들과 마찬가지로 욕망도 실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욕망은 실재를 향하고, 실재는 욕망의 원인이다. 따라서 욕망의 윤리 역시 실재 없이는 성립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실재란 무엇인가? 우리는 먼저 실재를 상상(the imaginary)과 상징(the symbolic)이라는 다른 질서들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언어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의미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기표의 전체집합이 필요하지만 마지막 기표는 계속 연기되므로 전체가 구성될 수 없다는 모순을 안고 있는 언어의 체계가 상징계이고, 이러한 조건 위에서 금지와 배제를 통해 전체를 환상적으로 구성하는 것은 상상계이다. 그렇다면 실재는 상상적인 전체가 구성됨으로써 필연적으로 상징질서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어떤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라캉이 종종 말하듯이 실재는 ‘상징화를 거부하는 어떤 것’이다. 실재는 상징계의 바깥이다. (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