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인류와 함께한 역사>
이스탄불은 그리스 로마, 비잔틴, 이슬람 문화 등 동서양 문명이 만나는 격동의 도시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슬람문화의 전도사 이희수 교수는 이스탄불을 너무나 사랑하여 무려 85회를 방문하였다 한다. 따라서 그가 들려주는 이스탄불 이야기에는 인류의 역사를 담은 유적들 이야기뿐만 아니라, 도시민들의 생활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스탄불의 탄생, 눈먼 자의 땅에 도시를 세우라>
저자는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인 이스탄불의 곳곳을 소개하기에 앞서 먼저 이스탄불이 탄생하기까지의 굴곡의 역사를 소개한다. 기원전 7세기 그리스 통치자 비자스는 오랜 기도 끝에 “눈 먼 땅에 새 도시를 건설하라”는 델피 신전의 신탁을 받았다. 이 의미를 깨닫지 못했던 비자스는 보스포러스 해안 맞은편 언덕과 마주친 순간 무릎을 쳤다. 그곳에는 세 바다가 만나는 천혜의 요새에다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절경이 숨어 있었다. 이 언덕은 바로 지상의 천국이었다. 그 누구도 눈이 멀어 미처 보지 못했던 언덕에 비자스는 그의 도시를 건설했다. 비자스의 도시 비잔티움은 이렇게 생겨났다.
풍부한 자원이 있고 전략적 가치가 뛰어난 비잔티움은 새로운 지배세력이 등장할 때마다 가장 먼저 관심을 갖는 지역이었다. 수많은 정치적 소용돌이를 경험하면서 비잔티움의 운명은 수시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페르시아와 그리스와 로마의 간섭을 받았고, 323년에는 로마 황제 콘스탄틴 대제가 이 도시를 수도로 정한 후 그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이 되었다. 476년에 서로마가 멸망한 뒤에는 동로마의 수도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교량의 역할을 담당했다. 콘스탄티노플의 비극은 1203~1204년에 걸친 제4차 십자군 원정군의 침입으로 절정에 달했다. 1203년 7월 17일 도심에 진입한 십자군 원정대는 부와 풍요를 자랑하던 콘스탄티노플의 재산과 문화적 기반을 유린하였다. 결국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에 의해 점령당했고, 이후 이슬람의 도시인 이스탄불로 그 운명이 바뀌었다.
<돌마바흐체의 시계는 9시 5분에 멈춰 있다>
돌마바흐체의 모든 시계는 9시 5분에 멈춰 있다.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고 터키 공화국을 창설한 케말 아타투르크가 서거한 시각이다. 이스탄불은 여전히 이슬람적 분위기와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사고가 깊은 호흡을 하고 있다. 5천 년 역사 도시다운 풍모와 문화적 저력이 도시의 토양에 깊숙이 배여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지구촌 전역에서 역사를 사랑하고 인류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이스탄불로 몰려드는 이유일 것이다. 인류문명의 살아 있는 현장 박물관, 동양과 서양의 각기 다른 모습들이 조화를 이루며 너무나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이스탄불. 이 책의 저자는 글로벌 시대, 나와 다른 모습, 나와 다른 생각들을 끌어안고 가야 하는 우리가 이스탄불에서 작은 희망을 찾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