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의 스콧
스콧은 영국 해군으로 남극 탐험사상 매우 유명한 두 번의 탐험을 했다. 한번은 인간 역사상 최초로 남극 내부로 진입해 들어간 디스커버리호 탐험이고 다른 한번은 두 번째 탐험이자 마지막 탐험인 테라노바호 탐험이다. 로스의 남극 탐험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킨 디스커버리호 탐험 (남극에서 2년 3개월 체류)의 놀라운 성공으로 그는 리더쉽을 인정받아 해군에서 승승장구하지만 조각가인 케슬린 브루스와 결혼한 지 만 2년만에 아들의 탄생을 뒤로 하고 다시 남극으로 떠났다. 이것이 유명한 테라노바호 탐험이다. 목적은 여전히 정복되지 않고 있는 “남극점 정복”과 당시에 거의 이루어지지 않던 “남극에 대한 과학적 연구”였다. 테라노바호 탐험대는 1911년 초에 남극의 맥머도만의 로스해에 도달하여 데포 설치 작업을 거처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11월1일 “남극점 정복” 위해 극점으로 떠났다.
1912년 1월 17일 스콧은 윌슨 에반스 보워즈 오츠와 함께 직접 썰매를 끌어 남극점 정복에 성공하지만 개썰매를 이용한 아문젠팀이 먼저 남극점을 정복한 후였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의 귀환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그 해의 이상 기후(예상밖의 심한 폭설과 이상 한파) 악성 지표와 길고 험난한 코스는 직접 썰매를 끄는 그들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게 했다. 결국 에반스가 크레바스 추락 후에 급속히 무너졌고 결국 사망했다. 연이어 오츠가 혹독한 기후에 동상이 악화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고 죽음을 맞았다. 스콧 윌슨 그리고 보워즈는 마지막까지 고군분투했지만 안전을 확보하는 원톤 캠프를 바로 앞에 두고 지속적인 눈보라에 발이 묶였다. 약 5개월의 썰매 행군이 겨우 하루 행군 거리 앞에서 차단된 것이다. 비극의 일차적인 원인은 천재였다. (과학적인 분석 결과이며 구체적인 것은 책 속에 언급된다.)
스콧은 이 탐험으로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지만 이것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를 영국이 아닌 세계 무대에서 오랫동안 주목받게 만들었고 21세기로 넘어온 이 시점까지 100년 동안 쟁점의 중심에 서 있게 했다. 데이비드 크레인의 말처럼 일찍이 스콧만큼 많은 흥미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조명을 받았던 탐험가가 없었다. 스콧의 테라노바호 탐험대는 “남극의 지식과 정보”를 지향했던 스콧의 비전에 따라 풍부한 과학적인 결실을 거두었다. 동물학 8권 기상학 3권 지질학 3권을 비롯하여 물리학 지도 제작서 등 많은 연구물이 출간되었다. 바로 이 책은 테라노바호 탐험대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하고 있다. 그 속에는 그들의 탐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열광적인 관심을 받았던 탐험대의 절제된 남극 생활 과학에 대한 무한한 헌신 그들이 겪었던 모험과 위기 당시에 급박했던 여러가지 상황들 그리고 그 이후에 많은 공격을 받았던 쟁점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덧글 쓰기엮인글 공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