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인간 존재 안의 어둠과 생의 운명적인 폭력을 깊이 있게 탐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 배수아의 불온한 매력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엄마와 오빠, 여동생과 함께 살아가는 주인공의 냉정하면서도 일견 허무적인 시각이 1988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주인공은 자신이 속한 가계의 핏줄이 그러하듯 세상에 대해 냉소 섞인 무감동한 시선으로 가난과 부적응의 상태를 견뎌나가는 삶을 살아갈 줄 아는 인물이다. 그녀의 남자 친구였던 철수 역시 단조로운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군대에 가서 복무하는 동안 철수는 급하고, 자기 욕망에 보다 충실한 사람으로 변해버린다. 주인공은 군대에 있는 남자친구 철수를 면회 가는 길에 그녀는 마치 블랙홀처럼 불확실한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고, 여전히 변함없는 일상과 이미 변해버린 철수의 모습을 극명하게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알던 철수는 이미 그곳에 없음을 알고 철수를 떠나고서 다시 “절대로 무의미한 것이 되어” 그녀만의 시간을 살아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