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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사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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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사연들

저자
백우진 저
출판사
웨일북
출판일
2019-01-16
등록일
2020-05-27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20MB
공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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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 속으로

나도 ‘억울하다’라는 낱말이 다른 언어와 비교한 한국어의 차이 중 하나라고 생각해왔다. ‘억울하다’라는 말은 일본어에는 물론 영어에도 없다. 한 영어사전은 ‘억울하다’를 ‘feel victimized’라고 설명했는데,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아니다. 다른 한영사전을 찾아보면 ‘find oneself in the sorry position of being charged with another’s crime(억울하게 남의 죄를 뒤집어쓰다)’이라고 길게 번역돼 있다.
p.21


영어를 제외하면 세상 대다수의 언어에는 유의어 사전이 없다. 책 《The Miracle of Language》에 따르면 유의어 사전은 대부분 언어권에서는 생소한 개념이다. 어휘의 숫자와 구조를 볼 때 거의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의어 사전은 영어로 ‘thesaurus’라고 불린다. 최초의 영어 유의어 사전은 1852년에 나왔다.
p.68


돼지는 도토리를 잘 먹는다. 도토리라는 이름도 돼지에서 나왔다. 잠시 돼지의 옛 이름 ‘돝(돋)’을 돌아보자. 돼지 새끼는 강아지?송아지?망아지처럼 돝아지였다가 도야지로 변했다. 모자(母子) 단어인 ‘돝-도야지’ 중에서 언젠가부터 돝이 덜 쓰이다가, 도야지만 남아 돼지가 되더니 이윽고 돼지가 돈(豚) 성체를 가리키게 됐다.
p.102


‘통이’ ‘퉁이’ ‘뚱이’도 사람을 가리키는 데 붙는다. 신통이는 신통하게 구는 사람을 귀엽게 부르는 말이다. 고집통이는 고집이 센 사람이니, 고집쟁이랑 같은 단어다. 꾀퉁이는 꾀쟁이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배퉁이는 제구실은 하지 못하면서 배가 커서 밥을 많이 먹는 사람을 놀릴 때 쓴다. 새퉁이는 밉살스럽거나 경망한 짓을 하는 사람이다. 잠퉁이는 잠꾸러기의 방언. 잘난 체하고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을 놀릴 때 쟁퉁이라고 부른다.
p.162


흠씬과 물씬의 ‘씬’의 어감을 잘 드러내는 낱말이 ‘훨씬’이다. 훨씬은 ‘정도 이상으로 차이가 나게’를 뜻한다. 나는 이런 측면에 착안해 ‘~씬’은 보통보다 훨씬 정도가 더하다는 뉘앙스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푹씬’이라는, 사전에 아직 없는 단어를 예로 들겠다. 조금 푸근하게 부드럽고 탄력이 있는 느낌을 나타내는 부사 ‘푹신’보다 더 강하게 ‘씬’ 소리를 내면 된다. 푹신은 ‘이불로 아기를 푹신 감쌌다’처럼 쓰인다. 푹씬은 ‘두툼한 양모 이불로 아기를 푹씬 감쌌다’처럼 활용하면 된다. 또는 ‘돼지 족을 푹씬 삶았다’처럼 쓸 수도 있다.
p.165




어떤 글자로 끝나는 단어를 찾는 일은 심심풀이에 그치지 않는다. ‘밥’으로 끝나는 단어를 모아서 찾아보게 하면, 밥과 관련해 적절한 단어를 고르는 데 도움을 준다. ‘진밥’의 반대말은 ‘된밥’이고, 아주 되게 지은 밥은 ‘고두밥’이라고 부른다. ‘찰밥’의 반대말은 ‘메밥’이다. 낚시할 때엔 ‘떡밥’을 쓴다. ‘연밥’은 연잎에 싸서 찐 밥이 아니라 연꽃의 열매다. ‘녘’ 어미의 단어는 동녘, 서녘, 남녘, 북녘, 들녘, 아랫녘, 개울녘, 해질녘, 밝을녘, 어슬녘, 저물녘 등이 있다. 이로써 ‘녘’은 방향과 지역 외에 하루 중 어떤 시기를 나타내는 데 쓰임을 알 수 있다.
p.179


귀얄은 풀을 바르거나 옻을 칠할 때 쓰는 솔로 돼지털이나 말총을 넓게 묶어 만들었다. 풀비라고도 불린다. 풀을 바르는 빗자루라는 말이다. 귀얄은 우리말에서 희귀한 어종(語種)에 속한다. ‘얄’로 끝나는 우리말은 귀얄 외에 미얄과 비얄뿐이다. 미얄은 봉산탈춤 일곱째 마당에 등장하는 인물로, 영감의 구박을 받아 죽는 아내를 가리킨다. 비얄은 ‘비탈’의 경기도 사투리다.
p.205


‘부레가 끓다’는 ‘몹시 성나다’는 말이다. 예컨대 ‘억지로 참자니 속에서 부레가 끓었다’라고 표현한다. ‘부아가 나다’나 ‘부아가 치밀어 오르다’는 관용구도 뜻이 비슷하다. 여기서 ‘부아’는 노엽거나 분한 마음을 뜻한다. 부아의 다른 뜻은 허파다. 사람의 허파를 가리키는 낱말 ‘부아’가 물고기 ‘부레’와 한 음절이 같고 비슷한 관용구에 쓰이는 점이 흥미롭다. 더 재미난 사실은 부레와 부아가 생물학적으로는 상동기관(相同器官)이라는 점이다.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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