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우리 역사의 중요한 장면들과 함께한 시와 노래를 통해 한 시대가 남긴 고민의 흔적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초상을 그려보려는 시도이다. 역사에 그 이름조차 전하지 않는 시인들은 지배자의 권력을 정당화하고 피지배자들로 하여금 새 왕조에 대한 경외감과 복속을 유도하는 노래를 불러 은밀히 저잣거리에 퍼뜨렸는데, 우리 문학사 첫머리를 장식하는 「구지가」와 노래의 배경 설화만 전해지는 「동경곡」「도솔가」등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권력자의 입장에서 혹은 권력의 중심에서 쓴 시가 있다면 반대로 권력의 변방에서 쓴 시들도 있다.
조선 시대를 관통하는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은 여러 번의 사화로 귀결됐는데 그 때마다 중앙 정치에서 쫓겨나거나 스스로 물러난 사림들은 시와 노래로 세월을 보내야했다. 또한 민초들의 어려운 삶을 대신한 시도 있다. 조선조 가장 유명한 시화(詩禍)의 주인공인 권필은 왕릉이나 고관들의 무덤을 장식하기 위해 쓰였던 충주의 유명한 비석돌을 캐내느라 고통에 빠진 백성의 모습과 죽은 자의 이름을 선양한답시고 비석 세우기를 일삼는 자들의 속물 취미와 권세 있는 자들의 허위의식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저자는 “역사적 사건에 언제나 한몫 끼인 시인과 시에 관한 좀 별난 이야기들”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 방식은 시와 노래를 문학사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에서 벗어나 역사와 정치라는 큰 틀에서 시인들의 삶과 그들의 시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당대의 문학을 당대의 현실 속에서 읽게 되는 눈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소개
한국전쟁이 한창 치열할 때 항도 부산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마쳤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고전 교과서에 실린 고려가요 「청산별곡」과 두시언해 가운데 「옥화궁」이 너무 좋아 노상 외우다가 대학도 국문과에 들어갔다. 서울대학교 인문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관각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동아대학교 국문과에서 한국고전시가와 국문학사를 강의하고 있다.
고전시가와 한시를 전공으로 공부하면서도 늘 고등학교 문예반 시절을 잊지 못해 현대문학을 기웃거리다가 고전비평이론으로 청마 유치환의 시를 분석해 석사논문으로 제출하는 만용을 부리기도 했다. 그 만용은 아직도 싹이 남아 서포 김만중의 문학 이론을 서양 문채론과 비교해 보기도 하고 주희와 한유의 문학본질론을 하이데거와 비교해 보기도 했지만 동료들로부터 전혀 호응을 받지 못했다. 다만 하와이대학에 방문연구원으로 있을 때 피터 리 선생의 『용비어천가의 비평적 해석』을 번역한 이후 우리 고전문학이 앞으로 서구 고전문학이나 현대문학과의 비교 연구를 거치지 않고서는 한걸음도 진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더욱 고집처럼 머리에 새기게 되었다. 부산일보에 기고했던 「한문 새로 보기」라는 칼럼은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지은 책으로 『문학과 정치―한국고전시가의 정치론적 해석』『남효온의 삶과 시』『한국 관각시 연구』등이 있으며 번역서로『용비어천가의 비평적 해석』『쉽게 풀어 쓴 대동기문』등이 있다. 최근 동아대 석당학술원에서 펴낸 『국역 고려사』총 32권의 책임교수를 맡아 10년간 번역 작업에 매달리기도 했다.
목차
책머리에 시인과 시에 관한 좀 별난 이야기들
01 왕을 위한 송가-「구지가」, 그 엽기의 비밀
신령스러운 군주를 맞이하는 노래? | 여러 가지 해석들 | 고대 기우가와의 유사성 | 「구지가」의 정체 | 「구지가」를 위한 변주곡
02 국가의 탄생-신라 건국과 노래의 기능
정치적 상징조작의 힘 | 음악의 순기능과 역기능 | 「동경곡」은 어떤 노래일까? | 서정요가 정사에 실린 이유 | 「도솔가」와 「회소곡」의 성격
03 야만 시대의 도전-고려 무신난과 지식인의 선택
장군들 뿔나다 | 시인의 길 | 최고의 시인, 최고의 아부꾼 | 원수 년의 가난이야
04 무너진 길에 여울물만 흐르고-고려 멸망의 현장에서 쓴 회고시
무너진 길 | 고려의 멸망과 비극 | 함원전 옛터에는 | 만월대의 피리 소리 | 풀만 절로 봄이로다
05 아첨과 규간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용비어천가」물망장의 의미
국가권력과 상징조작 | 창업과 수성의 어려움 | 찬미와 규계, 그 완결된 구조 | 입에 침이 마르도록 | 그리 마옵소서
06 강의 서정-단종의 비극과 은둔 시인 남효온의 독백
산림의 시 | 남효온의 삶과 좌절 | 강의 서정 | 죽음, 그 뒤
07 가난한 시대의 문학적 초극-기묘사화와 박상의 이상 정치
대문 밖의 맹수들 | 시인의 삶, 관료의 삶 | 시련과 좌절 | 시로 말하다 | 문학은 나의 힘
08 그대의 풍류, 무덤에서 적막하네-풍자시로 참화를 당한 권필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 불쌍한 돌아! | 필화 일어나다 | 못다 한 이야기
09 곡해줄 사람도 없으니-임진난의 상흔을 담은 이안눌의 서사시
장독 가득한 남쪽 나라로 | 전쟁이 남긴 생채기 | 고향 앞으로
10 추악한 괴물들의 고통-조선 후기 민중의 삶을 기록한 이방인과 시인들
그때 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벽안의 이방인이 본 민중들의 비참한 삶 | 화전민의 노래 | 무전이면 유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