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 이순신 - 살림지식총서 462
▶ 내용 소개
한국사에 취약하다고 하는 일반인은 물론 상대적으로 역사인식 수준이 낮다고 평가되는 요즘의 청소년들조차 익히 알고 있는 위인이 있으니, 그가 바로 ‘충무공 이순신’이다. 또 ‘충무공 이순신’ 하면 용맹의 표상이요, 뛰어난 전략가, 거북선을 만들어 왜구를 물리친 조선의 명장이 떠오르는 건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이쯤에서 ‘얼마나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알고 있느냐’라는 지적이 등장한다.
‘명장 이순신’이 아니라 ‘인간 이순신’의 모습은 어떠한가? ‘명장의 길’을 위해 그가 감수해야 했던 고통과 비난은 무엇인가? 『장군 이순신-난중일기를 통해 본 정도의 원칙』은 바로 이런 물음에서 시작한 책이다. 나아가 원균과의 불화설, 이순신을 둘러싼 크고 작은 오해의 진위를 밝혀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여기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바 있는 『난중일기』가 주요 근거로 제시된다.
『난중일기』구석구석에서 묻어나는 충무공 이순신의 인간적인 감정, 그리고 ‘명장 이순신’과 ‘인간 이순신’ 모두에게 엄격히 적용되었던 정도(正道)의 원칙! 비장함의 깊이를 더하는 한 장수의 고뇌와 비애! 성웅(聖雄) 이순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이 책이 또 하나의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지은이 소개
도현신
1980년 1월 6일 수원에서 출생. 2004년 소설 『마지막 훈족』을 e-book으로 북토피아에서 출간. 2005년 순천향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2005년 광명시에서 주최하는 ‘제4회 전국신인문학상대회’에서 단편소설 『나는 주원장이다』로 장려상 수상. 2008년『원균과 이순신』『임진왜란 잘못 알려진 상식 깨부수기』의 출간으로 본격적인 작가 활동 시작. 저서로『옛사람에게 전쟁을 묻다』『한국사 악인열전』『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왕가의 전인적 공부법』『어메이징 한국사』『한국의 음식문화』등 다수가 있다. 앞으로도 계속 인문 서적을 통해 나름대로 역사를 공부해 나갈 예정이다.
▶ 책 속으로
1597년 10월 14일
밤 두 시쯤 꿈에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로 가는데 말이 발을 헛디뎌 냇물 가운데 떨어졌다. 하지만 쓰러지지는 않고, 막내아들 면이 끌어안고 있는 것 같은 형상이었는데 그때 마침 잠을 깼다. 이게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 집안 편지를 전했다. 봉한 것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아찔하여 어지러웠다. 대충 겉봉을 뜯고 둘째 아들 열이 보낸 편지를 보니, 겉에 ‘통곡(痛哭)’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어 면이 전사했음을 짐작했다. 어느새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 또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인자하지 못한가!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살아야 이치에 맞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사니 이런 어그러진 이치가 어디 있는가. 천지가 캄캄하고 해조차 빛이 변했구나! _pp.16~17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부터 이순신은 이렇게 군기 확립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자칫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면 괜한 짓을 한다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난중일기?에 남긴 기록들은 수사(水師)로서의 임무에 완벽하게 철저한 모습을 보여준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모든 것을 규범대로 수행하는 소위 ‘FM 군인’이었던 셈이다.
이순신이 이렇게 처벌을 가한 횟수는 난중일기 전체를 통틀어 총 백 회가 넘는다. 상황이 이러니 원칙대로 엄격한 형벌을 가하는 이순신을 원망하는 백성들 또한 많았다. _p.32
그러다 이순신이 원균에 대해 직접적인 미움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 사건이 벌어진다. 1593년 2월 22일의 일이다. 이날 제포 전투에서 이순신이 이끈 연합 함대는 도망가는 왜 수군을 쫓아가다 아군의 함선 두 척이 좌초되는 바람에 적에게 역습을 당해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아군의 위기를 보고도 경상우수영 소속 좌위장과 우부장은 못 본 체하고 끝내 구해주지 않았다. 전황을 지휘하면서 그 광경을 목격한 이순신은 경상우수영의 태도를 보고 매우 괘씸해했고, 아울러 그 원인이 원균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경상우수영 수군을 총괄하는 원균이 평소 자기 휘하 부대의 관리를 잘했다면 그들이 아군의 위기를 보고도 외면하는 일은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_pp.40~41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현군인 정조도 조정에 명을 내려 ?이충무공전서?를 발간토록 했다. 이 책의 말머리에는 정조가 직접 쓴 윤음(綸音)이 붙어있다. 정조는 이순신을 깊이 존경해 그의 일생을 정리한 책을 펴내도록 했으며, 모든 신하들에게 읽도록 하여 충무공이 세운 호국정신을 기리도록 했다. 또한 ?순조실록? 순조 8년(1808년) 1월 10일 기사에 따르면 “충무공의 상(喪) 때에는 백성들이 모두 흰 옷을 입었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유전(流傳)되어 비록 여자라 하더라도 모두 흰 치마를 입는다”는 말이 언급된다. _pp.78~79
도고가 쓰시마 해전 직후, 정말로 ‘자신이 이순신을 존경하고 있으며 자신이 거둔 승리도 이순신의 업적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면 당연히 일본에도 그런 기록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도고가 남긴 어떤 기록이나 쓰시마 해전 직후에 가진 기자회견 내용에서도 그가 이순신을 찬양한 내용은 찾을 수 없다. 생각해 보라. 러시아 해군을 제압하고 승리를 거둔 일본인 제독이 당시 자국보다 힘도 없고, 이제 곧 식민지가 될 운명에 처한 나라의 장군 이름을 왜 입에 담겠는가? _p.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