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떨어진 주소록
Where am I ?
내가 누군지 알려면 먼저, 내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한다
저자는 도시나 마을에 얽힌 역사적 일화들을 술술 풀어내고 거기에 문학과 과학의 옷을 입혀 생각의 지평을 넓혀간다. 가장 오래된 인류의 지적 유산에서부터 가장 최신의 지식과 이론들까지 종횡무진 아우른다. 과학적 근거와 이론, 역사적 사실, 역사적 인물, 문학 작품들과 같이 탄탄한 근거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존재’에 대한 탐구를 제안하는 것이다.
이처럼 ‘나는 어디에 있을까’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질문 중 하나를 던지며 이 책은 광대하고도 아름다운 여행으로 독자를 이끈다. 어느 한 장소를 떠나본 적이 없는 사람은 결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깨달을 수 없기에. 그리고 모든 여행이 그러하듯, 이 지적 탐험 역시 마지막엔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가 속한 세상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이어진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어디로 갈지 알 수 있다.
과학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문학적인
지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저자는 ‘내가 있는 장소가 어디인가’라는 추상적인 화두를 슬쩍 던져놓은 다음, 그것을 구실(?)로 자신이 알고 있는 문학과 과학, 역사와 지리, 지구와 우주, 인간과 자연에 관해 때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아주 미시적으로, 때론 우주 저 끝에서 바라보듯 아주 거시적으로 세상만사를 살펴본다. 책에서 다루는 대상의 범위가 너무 넓고 다양해서 따라가기 버겁기도 하고 종잡을 수 없기도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잡다함(?)을 하나로 꿰는 실 하나쯤은 있다. 그것은 책에 관한 애정, 혹은 문학적 상상력에 관한 믿음이다.
뉴질랜드 태생인 저자가 어릴 적 살던 집에는 지도와 책이 많았다. 지리학자인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세상의 끝자락, 혹은 유럽 문화의 변방에 살고 있다고 여겼던 저자는 어려서부터 책과 지도 속에서 세상에 관한 꿈을 키웠다. 열두 살 무렵부터 학교를 졸업하고 신문사에서 일을 시작할 때까지 동네에서 신문배달을 했고, 영국으로 건너가 《가디언》 지의 편집자로 32년간 일했다. 그래서인지 본격적으로 책의 힘에 관해 언급한 부분 외에 전혀 다른 분야를 다룬 듯한 부분에서도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재채기처럼, 책에 관한 특히 문학에 관한 저자의 애정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