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조선인 박연 (상)

조선인 박연 (상)

저자
홍순목 저
출판사
알에이치코리아(RHK)
출판일
2013-05-23
등록일
2020-05-27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23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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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하멜보다 26년 앞서 조선에 표착하여 이 땅에 뼈를 묻은 벨테브레,
생의 불가항력을 딛고 ‘조선인 박연’으로 살다 간 기구한 운명의 드라마!

80여 년 전,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을 깨운 한 유럽인이 있었다. 네덜란드 출신 선원 얀 얀스 벨테브레, 아니 조선인 박연. 하지만 지금 많은 사람들은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가슴 깊이 조선을 사랑했고, 조선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다 이 땅에서 죽었지만 우리 역사의 벽화에 그의 모습은 그리 뚜렷하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그의 조국 네덜란드에서조차도 하멜의 모험 가득한 영웅적인 면모만 우뚝할 뿐 박연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미미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박연, 그는 도래인이지만 누구보다 이 땅 조선을 사랑하였고, 이 민족에 공헌하는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이방인이란 이유로 우리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진 불행한 인물이다. 이는 그의 불행인 동시에 우리 역사의 불행이다. 비록 때늦은 감이 있지만 소설 『조선인 박연』은 4백여 년에 가까운 긴 화석의 시간 속에 잠들어 있는 박연이란 인물을 소생시켜 그의 파란만장하고 장엄했던 삶을 되살린다. (「작가의 말」 중에서)

역사 속에 잠들어 있던 우리나라 최초의 귀화 유럽인 박연,
이방인이지만 누구보다 조선을 뜨겁게 사랑했던 거인의 삶이 되살아나다

“눈은 하늘빛처럼 푸르고 피부는 겨울눈처럼 하얗고 머리털은 붉어 홍모라고도 불리는”, 동양에서는 확연히 구분되는 외모를 가진 박연이 하필 조선에 표착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연합동인도회사의 선원이었다가 무역선이 약탈당하자 고국으로 돌아가길 포기하고 해적의 길을 택한 박연은 어느 날 타고 있던 배가 포르투갈 사략선의 공격을 받고 침몰해 조선의 해역까지 떠밀려 온 것이다. 그는 이렇게 하멜보다 먼저 조선에 표착해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숨을 거둘 때까지 ‘박연’이란 이름으로 조선에 머물렀던 최초의 귀화 유럽인이 되었다.
조선에 도착한 계기는 우연이었을지 몰라도 박연이 조선에 끝까지 남은 것은 본인의 선택이었다. 그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탈출을 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20여년 늦게 조선에 표착한 하멜이 일본으로 떠날 때에도 그의 훈육교사이기도 했던 박연은 조선에 남았다. 이방인이었지만 병자호란에 참여해 외인부대를 이끌고 화포 개발이라는 엄청난 업적을 수행했던 박연. 그가 고국에 대한 향수를 마음에 묻고 낯선 타국에서 한평생을 헌신하며 살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홍순목 작가는 하마터면 실록의 몇 줄로 삶이 요약된 채 역사 속에서 영영 사라 질 뻔했던 박연의 불꽃같던 생애를 《조선인 박연》(총 2권)에 담아냈다. 저자는 박연이 오히려 하멜보다 덜 알려져 있는 현실을 마음 아파하며 오랜 집필 기간 끝에 우리 기억에서 사라진 그 이름, 박연의 일대기를 완성한 것이다. 저자는 17세기 당시의 시대적 정황과 맞물려 큰 선택의 기로 앞에 놓였던 박연의 거인(巨人)으로서의 삶을 더욱 내밀하게 포착해냈다.


병자호란에서 목숨 걸고 조선을 지킨 무적의 외인부대가 있었다?
외인아병을 무대로 펼쳐지는 조선을 살아가던 이방인들의 뜨거웠던 삶과 애환

박연은 훈련도감 내 왜인, 위구르인, 아라비아인 등이 모여 있는 외인아병대에 배속된다. 이곳은 작품 속에서 박연과 그의 동료들이 주로 활동하는 무대로, 유독 혈통에 대한 전통과 집착이 강한 조선에서 외국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애환과 설움, 정체성에 대한 고민 등은 다문화사회가 된 현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외인아병의 부대원들은 각자 저마다의 애환을 품고 살아간다. 조선인과 혼인도 하고 자녀도 낳고 평범히 살아가지만 자신들의 태생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위구르인 부르카는 호방한 기색에서 여전히 유목민족 특유의 모습이 드러나고, 왜인 아사키는 갓 태어난 예쁜 아이를 품에 안고서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이 땅에 사는 한 자기 자식은 영원히 왜놈의 자식으로 버러지도 못한 취급을 받을 거라고 한탄하는 아사키를 크게 다그치는 아오야마. 하지만 그 또한 오래 전에 태어난 둘째 아들을 조선 명문가에 양자로 보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운명의 장난처럼 훗날 외인아병을 무시하는 군관이 되어 아오야마의 앞에 나타난다.
박연 또한 애초에 스스로 선택해서 조선에 온 것이 아니라 배의 침몰로 인한 표착이었던 만큼 조선에 머무는 평생 동안 자신이 처한 운명의 굴레에 대한 고민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항상 대의만을 위해 살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작품 곳곳에서는 박연의 인간적인 고뇌가 묻어나기도 한다. 어느 순간 모국어를 잊을 정도로 오히려 조선어에 익숙해졌고 조선 여인과 혼인까지 했지만 낯선 동방의 나라에서 완벽한 소속감을 느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느 날 박연은 조선에 우연히 표착한 같은 네덜란드 출신의 하멜과 그의 동료 선원들을 마중하러 간 자리에서 모국어가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입 밖으로 나오지 않자 당황해 한다. 조선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모국어조차 제대로 말할 수 없게 된 상황을 마주하곤 순간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 병자호란에서 목숨을 걸고 조선을 위해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이제 누가 뭐라 해도 그들은 조선인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가 있고 터전이 되어버린 땅이 위협당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차별을 당할 때도 많지만 그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같은 테두리 안으로 받아들여주는 우달과 이완 같은 자들도 있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은자의 나라 조선에 온 최초의 유럽인 박연이 이 땅에 정착하는 과정, 그리고 박연과 외인아병대원들의 가족이 겪는 갈등을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그려냄으로써 ‘민족’과 ‘혈통’에 대한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아우름과 동시에 동서 문명의 충돌과 화합을 통해 이질적인 문화, 민족의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칼의 시대'가 저물고 '총의 시대'가 열리던 격변기
청의 위협과 잦은 침략으로 뜨거운 민족혼이 넘쳐나던 시대

박연이 조선에 머물던 시기는 명과 후금의 세력 다툼으로 동북아시아의 정세가 급변하던 시기였다. 더욱이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유럽의 여러 국가가 아시아로 진출하면서 신식 무기를 포함한 서구 문물이 도입되었다. 조선에서는 후금에 대한 대우를 두고 대신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지만 병자호란에 패하고 국왕이 이방의 왕 앞에 무릎을 꿇고 신하의 예를 올리는 치욕을 당하고 나서는 북벌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다.
국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낡은 칼을 버리고 총과 대포라는 신식 무기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총포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누구보다 가장 먼저 감지한 이가 바로 훈련도감 대장 이완이었다. 조선제일검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검술이 뛰어난 그였지만, 더 이상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다. 조선의 무력이 커지는 걸 원치 않던 청의 저지로 조총과 같은 신식 무기는 밀수를 통해서나 겨우 구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이완에게 총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아는 박연과의 만남은 운명과도 같았다. 조선 군인에게 위협을 당하고 있던 동료를 구하기 위해 훔친 총을 쏘는 박연의 모습을 보고 이완은 이 남만인이야말로 지금 조선에 가장 필요한 인물이라 확신한다.
몇 번의 탈출의 기회가 있었지만 고민 끝에 이를 모두 고사하고 조선에 남기를 택했던 박연은 북벌론을 주장하던 효종의 사람이 되어 홍이포를 개발하는 등 북벌론에 힘을 싣는다. 수십 년간 대양을 오가며 무역선원으로 일하는 동안 얻게 된 넓은 시야로 세계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았던 박연은 왕에게 바다 진출의 중요성과 상업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조선인이라면 타고나지 못했을 명징한 시선으로 정세를 파악한다. 박연을 중심으로 작품 속에서 전개되는 그 당시 조선의 격변하는 기류와 용솟음치는 민족혼은 독자들의 가슴을 울릴 것이다.


◈ 저자 소개
홍순목 경북 의성에서 출생하였으며,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호수의 눈」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었고, 「신들의 황혼」으로 KBS 드라마 극본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조선인 박연』(전2권)은 소설과 영상을 아우르는 큰 이야기를 꿈꿔온 그가 카메라가 아닌 아름다운 문장으로 찍은 한 편의 장대한 드라마이다.


◈ 책 속으로
성문 앞 수문졸의 눈이 문득 휘둥그레졌다. 관아로 향하는 성문 거리를 걸어가던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비명을 올렸다.
“에구머니나! 저게 뭐야?”
“대체 사람이야 짐승이야? 세상에 저렇게 생긴 짐승이 다 있어?”
본 적이 없는 괴상한 차림의 괴한들이 포승에 묶여 끌려가고 있었다. 차림새보다 더욱 기이한 것은 그들의 생김새였다. 붉고 노란 머리카락에 추녀마루처럼 드높은 코, 푸른빛이 쏟아져 나오는 눈, 회분을 바른 듯 허여멀건 피부, 자신들보다 족히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는 체구…… 그런 자들이 하나, 둘, 셋. 그리고 그들 곁에 꾀죄죄한 몰골의 꼬마 하나가 조롱박처럼 매달려 있었다.
성문 거리가 금세 모여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한 사람들이 행렬의 뒤를 따르며 저마다 놀란 소리를 냈다.
“두 발로 걷는 걸 보니 필시 짐승은 아닌 것 같은데…… 살다 살다 저런 인종은 처음 보네. 거참, 희한하게도 생겼다.”
<상권 63쪽 중에서>

이완은 바다 너머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불어오는 수상한 바람을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꿈꿔본 적이 없을 만큼 강성한 그 무엇. 낯선 땅, 낯선 인종, 낯선 문명, 낯선 질서로 이룩된 낯선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낡은 칼이 아니라 새로운 총의 세상. 무기력한 이법의 세상이 아니라 강력한 무력의 세상. 안정과 질서와 평화의 세상이 아니라 혼돈과 갈등과 전쟁의 세상. 화합과 선린이라는 인간의 윤리가 아니라 우승열패, 적자생존이라는 금수의 법칙이 칼날처럼 벼려진 세상. 그들이 다가와 이 땅의 문을 두드릴 때,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맞이할 것인가.
<상권 93쪽 중에서>

낮 동안의 소음과 인기척은 사라지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요만이 사방에 가득했다. 피에테르츠와 히아베르츠는 목에 찬 형틀과 등의 상처로 인해 어깨를 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 불안한 잠에 빠져 있었다. 불길한 생각이 벨테브레의 머릿속을 채웠다. 모든 것이 나빠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조선인 소년은 사라져버렸고, 더 이상 심문도 없었다. 저들은 자신들의 생각대로 판단과 결정을 내렸음이 분명했다.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었다. 대체 무엇이, 어떤 사악한 힘이 자신을 이 낯선 땅으로 내몬 것일까. 거기에 어떤 무서운 비밀이 숨어 있는지 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는 한때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전사였고, 데레이프 길드의 솜씨 좋은 재단사였고, 선원이었고, 해적이었고, 지금은 야만인의 옥에 갇힌 죄수였다. 여기에 어떤 신의 섭리가 깃들어 있단 말인가.
옥사 바닥에 미끄러지듯 흔들리는 불빛을 보며 벨테브레의 표정이 결의로 굳어졌다. 신의 섭리가 무엇이든 자신의 운명을 야만인의 손에 맡겨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상권 110쪽 중에서>

“내가 오늘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는가? 노새새끼 한 마리를 만들어 놓은 주제에 그게 마음에 겨워 술을 마시고 춤을 추었다네. 부끄러운 건 아니네. 부끄러운 건 이놈의 나라지. 제 나라의 험한 일, 궂은일은 다 시키면서 결코 같은 백성으로, 인간으로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이 비겁한 나라가 부끄러운 거지. 하지만 그렇더라도 내 자식이 노새 새끼인 것만은 내 모가지가 어깨 위에 붙어 있는 것만큼이나 분명한 사실일세. 노새나 버새도 말의 종자이긴 하지만 그것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는 자네들이 더 잘 알 걸세. 평생 허리가 끊어지도록 짐이나 져야 하는 잡종의 운명을 말이야.”
<상권 223쪽 중에서>

“히아베르츠, 다시 생각해봐. 내일도 아침 해는 떠오르고 바람이 불고 날은 우라지게 춥겠지만 우리는 없을 거야. 하늘도 땅도 사람도 다 그대로인데 우리만 없는 거야. 죽는다는 건 그런 거라구.”
“젠장, 다신 호프만을 보지도 못하겠군.”
“그래. 네덜란드로 돌아가지도 못할 거야.”
그들은 수레 밑에 잠시 말없이 앉아 있었다. 요란하던 총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히아베르츠가 말했다.
“조선은 수백 년 역사를 가진 나라라고 했어. 그런 나라가 망하려는 순간이야. 누군가는 저놈들의 간담을 한번 서늘하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
“그렇긴 해. 하지만 저놈들을 봐. 마치 제 나라 땅인 것처럼 날뛰며 총질을 하고 있잖아.”
“하긴 그래. 저놈들…… 정말 꼴 보기 싫은 놈들이야.”
“놈들을 그냥 두고 돌아간다면 두고두고 부끄러울 것 같아.”
“그건 나도 그래.”
<하권 188~189쪽 중에서>

오래전 그는 네덜란드동인도회사 선원으로 저 바다를 누볐다. 그리고 지금, 조선의 장군이 되어 이 자리에 서 있다.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는 아득한 눈길로 하늘을 보고 바다를 보았다.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 어찌하여 저들의 옷을 입고 이곳에 나타난 것입니까?”
금발의 젊은이가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비로소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히 깨달았다.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고, 그것은 이제 신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순간, 폭발하듯 울음이 터졌다.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쏟아져 나왔다. 그는 성난 아이처럼 소리치며 울었고, 지쳐서 주저앉아 울었다. 그는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뷔 벤 이크? 뷔 벤 이크!(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울음은 끝도 없이 솟아났다.
<하권 362쪽 중에서>

고개를 들어 한동안 어두운 천장을 응시하던 왕이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찌하여 이 일에 이토록 열심이란 말인가?”
“나라가 버리고 신명이 버린다 하여 사람마저 버릴 수야 없는 일이옵니다. 사람마저 저 백성들을 버린다면 저들이 너무 가엾지 않겠사옵니까.”
왕이 돌아갔다. 작업장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이 깊은 우울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쓸쓸해 보였다. 훈국 청사를 떠나기 전 왕이 박연을 돌아보고 말했다.
“박 공. 그대의 나라는 어디인가?”
잠시 조용한 눈길로 왕을 바라보던 박연이 답했다.
“신의 나라는 조선이옵니다, 전하.”
“고맙네. 그대의 말처럼 이 나라 조선은 많은 모순을 안고 있는 나라이네. 하지만 이 땅의 백성은 어질고 인정이 많으며 부지런한 사람들이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반드시 이 나라를 정의로운 나라, 부요한 나라, 강성한 나라로 만들 것이네. 그때까지 그대는 부디 이 나라를 버리지 말게. 어리석은 왕은 버릴지라도 그 착한 백성은 버리지 말아주게.”
왕이 떠난 병사 마당에서 박연은 깊은 충격에 사로잡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떠나기 전 자신을 바라보던 왕의 어둡고 슬픈 눈빛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이미 몇 번인가 그런 눈빛을 한 이들을 본 적이 있었다. 아카기가 그랬고, 옥정이 그랬다. 아, 조선의 왕은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겠구나…….
<하권 389~390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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